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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이야기

죽음이 끝인 이유. 환생(타인으로)이 뭔 의미가 있나. 기억(생각)이 삭제가 되면 모든게 끝이다.? (나는 불교...)

by KIHEL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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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이 글은 죽음, 존재,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읽으시는 동안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이 아닐 수 있으므로, 개인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이 글의 내용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가 다를 수 있음을 유념해 주세요. 또한, 이 글로부터 긍정적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줄 수 있는 발언이나 위험한 생각은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각자의 가치관과 삶의 경험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서 죽음 이후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것은 인간의 평생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를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지, 영혼이 길을 찾아갈지에 대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 나 개인적으로 그런 존재를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주와 지구의 역사가 끝없이 길기 때문이다.

 

인간은 겨우 100년 미만의 짧은 인생을 살지만, 우주의 나이는 거의 무한에 가까워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인류의 탄생 시기를 생각해보면, 우주 역사에 비하면 해변의 모래알처럼 작다. 만약 인간의 영혼이 중요하고 소중하다면, 이 긴 우주 역사에서 우리의 영혼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전생을 기억하는 영혼이 있다고 가정해도, 그 전생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죽음 이후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수억 년간의 전생들을 모두 회상한 뒤, 다음 생에선 그 기억을 잃고 다시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기억조차 남지 않은 전생의 '나'와 현재의 '나'가 동일한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우주가 왜곡되어 전생의 기억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면,

 

그리고 다음 생에선 모든 전생의 기억이 소멸된 채로 삶을 시작한다면? 그렇게 되면, 전생의 기억을 가지지 못한 새로운 환생의 '나'와 전생의 '나'를 동일시할 수 있을까? 그저 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것과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yAUY1MEps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4769937

 

5억년 버튼 만화를 본 철학 교수님의 선택 | 유머 게시판 | 루리웹

5억년 버튼 만화를 본 철학 교수님의 선택

bbs.ruliweb.com

'5억 년 만화'라는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버튼을 누르면 50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5억 년 동안 살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 기억을 잃게 되어, 현재 나의 입장에서는 그냥 500만 원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님의 의견을 소개하면,

 

인간의 기억이 사라지면 정체성, 신념, 미학, 사회 관계, 문화 등이 바뀌거나 사라지므로, 그 인간은 '나'가 아니라 '타인'이 된다고 주장하셨다. 예를 들어, 30살인 나가 버튼을 눌러 5억 년 동안 산 뒤 돌아왔을 때, 기억을 잃게 되어 다시 30살로 돌아온다. 이때 5억 30살을 산 '나'는 사실상 죽은 것이고,

 

기억을 잃은 상태로 돌아온 30살의 '나'는 원래의 내가 되는 것이다. 즉, 기억을 잃은 '5억 30살'의 나는 타인이 된다. 전생에서 아무리 좋은 삶을 살았다 해도, 기억을 잃고 환생한다면 전생의 '나'는 결국 타인이 된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이고, 그로 인해 타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우주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기억을 잃은 채 환생했을 확률이 높으며, 그것은 이미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과 끝이 허무함을 의미한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죽음의 끝은 그냥 끝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죽어서 환생하고 기억을 잃는다면, 이미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며,

 

이 우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넓은 우주에서, 미세먼지보다 작은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는 이 우주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 철학에 동의하여 어릴 때 무종교였던 저는 가족들과 같이 불교 쪽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철학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죽음에 대한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경험들은 결국 기억을 잃게 되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생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들의 삶에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철학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존재가 이 우주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각자의 삶에서 찾아내야 할 개인적인 미션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관점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금 더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이러한 철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서, 우리는 우주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무아, 무념, 무상의 가치를 강조한다. 인간의 3대 욕구를 통제하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 한다. 기업 회장이든 조선 왕족이든, 성공한 사람들도 마지막에는 허무한 인생이라고 느낀다. 이루어낸 것을 죽어서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온 의미 있는 삶도 결국은 초라한 끝이다.

 

환생하든지 아니든, 그것은 '나'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도,

 

결국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 받은 고통과 기쁨을 기억해야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을 잃고 환생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생이든 환생이든, 다 결국 '타인'이며 무의미하다. 우리의 인생은 짧고 허무한 세상에서 살아가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을 하는 '나'는 진짜이고,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타인이다. 인간의 존재는 변한다. 어릴 때의 나는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변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는 죽어갈 것이고, 늙을수록 지금의 현재의 나는 미래에 이미 죽고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불교 사상이 가장 근접하게 맞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은 무념무상을 주장하며 자연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자고 했다.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며, 끝이 오면 모두 허무할 것이다. 이 때문에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주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죽음에 대한 고찰과 연관될 수 있다.

 

죽음은 생각이 리셋되거나 멈추는 것으로, 존재가 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죽음은 허무하며, 영원한 잠과 같이 생각이 멈추고 존재가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저자의 종교적 경향은 불교로 맞춰지고 있다. 불교는 철학적 관점에서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하며,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부처님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쳤으며,

 

이것은 우주의 물리적 법칙과도 일치한다. 어릴 때의 저자는 생각하지 않고 우울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인격이 변했고, 지금은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말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점점 변화하며, 과거의 '나'는 죽어가고 있다. 치매와 노화가 시작되면 더욱 빨리 존재가 사라진다. 결국 죽음은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으로,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30살의 저자는 5살 때의 기억을 전혀 회상할 수 없다. 90살이 되면 현재 30살 때의 일들이 기억날지 의문이며, 120살이 되면 50살 때의 일들조차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이미 죽음을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가 기능을 상실하고 숨을 멈출 때, 그 끝이 정해진 것처럼 과거의 우리가 이미 죽어간 것을 생각해보면,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2살 때의 나는 자신이 느끼고 보는 것, 존재를 본능적으로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5살 때의 나는 2살 때의 기억을 전혀 회상하지 못할 것이다. 80살이 된 나는 5살 때의 기억조차 전혀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릴 적의 나는 현재 노인이 된 존재와 함께 같이 살아 있는 것일까? 생각이 사라지면 존재도 사라지기에 어릴 때의 과거의 나는 이미 '타인'이 되어 먼저 죽은 것이 아닐까? 어릴 때 우리들은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항상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은, 잠들면 꿈도 없을 때의 기억이 없고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라면,

 

우리는 이미 매일 밤 죽음을 체험하고 있다. 영화에서 무덤 비석에 "영원히 잠들다"는 문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느낌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 끝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기 위해 종교를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튜버님의 80만 구독자를 넘는 영상은 나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링크를 가져와 봤습니다. 그 영상에서는 아주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 태어났다!"라고 생각하고, 잠들 때는 "오늘의 나는 죽는다!"라고 생각하면, 삶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시각을 두렵지 않게 바라보니, 오히려 더 편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잘 살게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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